밀집된 정예 보병, 팔랑크스의 내구력, 상대를 응징하는 방어적 반격.
플레이 스타일: 스파르타는 전투에서 살아남고, 상대에게 불리한 공격을 강요하며, 인내를 전장의 우위로 바꾸어 승리합니다.
밸런스 포인트: 범용 보호 대신 보병의 방어와 반격 플레이를 중심으로 재조정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청년들은 아고게를 거치며 자랐는데, 그곳에서는 인내와 복종, 군 복무를 위한 준비가 핵심이었습니다.
스키리타이는 정찰과 엄호, 스파르타 전열의 노출된 구간을 맡았던 강인한 변경 부대였습니다.
궁술은 스파르타를 대표하는 병과가 아니었지만, 그리스 군대에서도 원거리 부대가 지원 병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페리오이코이는 라코니아에 살던 자유민이지만 시민은 아닌 주민으로, 주로 보병과 장인으로서 전쟁에서 스파르타를 섬겼습니다.
스파르타 호플리테스는 창과 방패, 흉갑과 투구로 무장하고 팔랑크스에서 싸우도록 훈련된 중무장 시민 보병이었습니다.
히페이스는 스파르타 왕의 선발 근위대였습니다. 이름과 달리, 고전적 의미의 기병이라기보다는 주로 정예 도보 친위병이었습니다.
폴레마르코스는 고위 군사 관직으로, 그리스에서 이 칭호는 전쟁 지도와 지휘 권한을 뜻했습니다.
레오니다스 1세는 아기아다이 왕가의 스파르타 왕으로,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군의 항전을 이끈 것으로 유명합니다.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레 이후 불굴의 저항을 상징하게 되었고, 그의 항전은 그리스와 훗날 서양의 기억 속에 무인의 희생을 보여 주는 본보기로 남았습니다.
아고게는 전쟁을 위해 규율 있고 강인하며 순종적인 남성 시민을 길러 내도록 설계된 스파르타의 국가 훈련 제도였습니다.
그리스 호플리테스의 전쟁은 아스피스 방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규율 있는 방패 운용은 팔랑크스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 필수였습니다.
스파르타의 팔랑크스는 개인의 영웅적 행동보다 결속과 방패의 엄호, 규율, 집단적 전진에 의지했습니다.
테르모필레는 그리스인이 좁은 고갯길을 이용해 수의 우위를 제한하고 대군의 이점을 줄인 가장 유명한 사례입니다.
스파르타 특유의 이중 왕정은 두 왕가가 세습 권한을 나누어 가진, 이 나라를 규정하는 정치 제도였습니다.
팔랑크스의 근접전에서는 버텨 낸 뒤 즉시 되찌르는 것이 적의 밀어붙임을 국지적 우위로 바꾸는 열쇠였습니다.
그리스의 전쟁과 기억의 문화는 폴리스나 전열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희생을 자주 기렸습니다.
그리스 호플리테스의 전투는 개인전을 위해 대열을 깨기보다 압박 속에서 대형을 유지하는 데 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파르타의 이념은 훈련과 전투 모두에서 검소함과 인내, 엄격한 결의를 강조했습니다.
스파르타의 군사적 명성은 인내와 규율, 그리고 압박 속에서도 대형을 버리지 않는 태도 위에 세워졌습니다.